전 세계 비글의 슬픈사연

인사이트

안녕하세요. 비글이에요. 나이는 세 살, 이름은 없어요.

대신 귀 안쪽에 49811번 번호가 새겨져 있죠. 사람들은 절 실험견이라 불러요.

저와 제 친구들은 ‘악동’이라 불릴 만큼 사고뭉치로 유명한데요.

사실 별명이 무색하게 사고 한 번 쳐본 적 없어요. 태어나마자마 이 곳 철장에 갇혔거든요.

인사이트gettyimageBank

벌써 1년 째 살충제가 섞인 사료를 먹고 있어요. 농약 독성 실험 때문이래요. 언젠가부터 앞도 조금씩 흐려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요. 무섭긴 하지만 매일 겪는 일이라 놀랍지 않죠.

재작년에만 거의 1만 마리에 가까운 친구들이 실험에 이용됐어요.

전체 실험 동물의 94%가 저와 같은 비글이라더군요.(농림축산검역본부)

왜 하필 비글이냐고요? 그냥 참을성이 많고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이래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착하다는 이유로 평생 갇혀서 실험대상이 되어야 한다니, 조금 억울하기도 해요.

바깥이 너무 궁금하지만 나갈 길은 거의 없어요. 동물실험 자체가 워낙 폐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험이 끝나도 연구소 차원에서 쉽게 내보내지 않거든요.

인사이트gettyimageBank

어차피 관련 규정도 없는데다 밖에서 생길지 모를 사고 위험을 감당하느니 저희를 ‘폐기’하는 게 편하다고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실험된 친구들은 15만 마리에 달하는데요. 그 중 바깥 세상에 나간 건 고작 21마리밖에 없어요. 오늘도 약 30마리의 친구들이 이곳에서 죽어가고 있죠. (실험견구조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

그래도 최근에는 기쁜 소식이 들려요. 작년 8월에 미국 뉴욕에서 ‘비글 프리덤 법’이 통과됐거든요. 거기선 실험이 끝나고도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입양될 수 있대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실험동물 대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요.

인사이트gettyimageBank

작년 5월 인도에서는 제약회사 실험실에 살던 친구들 156마리가 처음으로 흙을 밟았죠.

우리나라에서도 움직임이 보이는데요. 보호단체를 통해 구조되는 친구도 계속 생기고 이번에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는 실험동물 입양 관련 법안도 포함됐어요!(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물론 아직까지는 실험견이 건강하지 않을거란 편견 때문에 입양이 쉽진 않지만, 조금씩이나마 제도와 인식이 바뀌고 있으니 한 번 기대해 보려고요.

항상 궁금했는데, 해님은 어떻게 생겼나요? 이곳을 나가 세상 구경을 해보는 게 소원이에요. 언젠가 실험이 모두 끝나면 제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요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