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기적은 개뿔 4살까지 버텨야 한다

“언니,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돌 되면 괜찮아진다며ㅜㅜ”

돌쟁이 아이를 키우는 친한 동생 집에 들렀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받은 질문이다. 당시의 내 모습이 갑자기 오버랩된다. 벌써 4년이 지난 일이지만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나는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살았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잤다. 사실 그러려고 노력해도 충분히 먹고 자기 어려웠다.

짬 나면 애 보느라 못했던 집안일을 해야 하니까. 씻는 건? 많은 엄마들이 알겠지만 ‘사치’에 불과했다.

장 보는 것 외엔 카드 쓸 시간이 없어 태평이가 태어난 후 일년은 내가 신용카드를 만든 이래 가장 적은 카드 값이 나온 기간으로 기록됐다.

(아마 다시는 이 신기록을 깨지 못하리라) 먹고 입고 잘 시간도 없는데 물건 살 시간이 있었을까. SNS에서 보는 멋진 아기 엄마들의 화려한 쇼핑? 절대 불가능했다.

어쩌다 쇼핑하려고 매장을 가봐도 애가 울거나 떼쓰기 시작하면 쇼핑은 무슨. 애 달래다 지쳐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은 늘 키즈카페 아니면 아이를 키우는 친구 집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서 날아오는 남편의 메시지 ‘미안, 오늘 늦을 것 같아’.. 일하느라 어쩔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야속하고 화가 날 수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소에 잘 자던 태평이는 그런 날이면 잠투정을 부렸다.(OTL) 겨우 재운 후 나 역시 잠을 청했지만 남편이 들어오지 않자 신경이 쓰인 나머지 잠이 달아나 버렸다.

남은 집안일까지 하고 나서야 눈을 살짝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선잠을 자다 자정을 훨씬 지나 인기척에 방 밖으로 나가면 길고양이처럼 숨죽여 들어오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부터 내 입은 마치 기관총이 된 마냥 따다다닥~~ 쏘아붙이기 시작.

“지금 뭐 하는거야? 하루 종일 애랑 있는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내가 이렇게 고생하려고 결혼한 줄 알아?”

보통은 여기서 남편이 꼬리를 내리면서 마무리되기 마련이지만 남편도 화가 치미는 날엔 그야말로 대판 싸우는 거다. 서로 결혼을 후회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며 최악의 상황엔 ‘이혼’이라는 단어까지 입 밖으로 나올 때도 있었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만 ‘현 to the 실’이다.^^;;;;)

밤잠을 설치며 눈물 콧물 쏟다 보니 태평이의 첫 돌이 다가왔다. 돌이 지나고 나면서 밤엔 늘 통잠을 잤기 때문에 몸이 한결 편해졌다.

다만 태평이가 낮에 너무나 스펙터클하게 활동한다는 게 함정이었다. 돌 지난 아이들의 활동성은 ‘성난 망아지’로 비유해도 부족하다.

태평이는 정말 얌전하고 순한 아이였음에도 쫓아다니다 보면 매일 같이 체력장 한 느낌이었다. 당시 내 입에선 ‘한 살이라도 어릴때 낳길 잘했지’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너무나 왕성하게 활동하다 아이들이 크게 다치는 것도 이때쯤이다. 태평이도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며 응급실에 갔었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후론 응급실 트라우마 때문에 1분 1초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안이 가장 어질러지는 것도 이 시기였다. 그나마 남편과 아이가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주말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친구들과 콧바람을 쐬러 갈 수 있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렸다. 물론 월요일이 시작되면 다시 반복될 스트레스였지만. ㅡㅡ^

왕성한 혈기에 장난기가 더해져 결혼할 때 마련한 예쁜 가구들을 스크래치와 크레파스칠로 엉망을 만들고 나니 태평이도 어느새 두 돌(3살)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턴 아이도 나름 경험해 봤다고 스스로 위험한 건 알아서 조심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대신 아이의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떼’가 늘어 정신적으로 피곤했다.(ㅜㅜ) 본인이 입고 싶은 것만 입고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 하는 건 물론, 사달라는 건 어찌나 많은지.. 아마 많은 엄마가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혼자서도 꽤 많은 시간을 걷고 밥도 스스로 먹어 육체적인 어려움은 많이 줄어들었다. 또 어디서 생긴 애교인지 “엄마 따랑해~최고~”라는 말을 한번씩 던져주면 남편이 늦는다는 문자도 한번쯤 웃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이 됐다.

아이의 떼에 울다 애교에 웃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태평이는 세 돌(4살)로 접어들었다. 어린이집에서 사회 규범 등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말귀를 척척 알아듣기 시작했다. 또 주고받기를 알고선 흥정도 조금씩 가능해졌다.

물론 지금껏 혼자 놀기를 주력으로 하던 아이가 또래와 어울려 놀기 시작하면서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그로 인한 태평이의 짜증은 내게도 밀려왔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이유는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엄마는 왜 나 사랑한다면서 어린이집에 가라고 그래?’ 라는 꽤 설득력 있는 말로 말문이 막히게 하는 화법도 구사했다.

하지만 돌 전 후와 비교하면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편했다. 어린이집에서 생기는 문제는 선생님들과의 상담을 통해 (시간이 걸릴 뿐)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이가 돌, 두 돌, 세 돌일 때의 굵직한 흐름의 변화를 보면 알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어려움보단 기쁜 일, 웃을 일이 많아진다. 글의 길이만 봐도 점점 짧아지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네 돌을 지난 지금 ‘완전 천국 같아요~’라고 말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매일같이 어려운 일이 생기지만, 솔직히 말해 아이가 태어난 이후를 되짚어 보면 5살인 지금이 가장 편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변수는 둘째가 있느냐 없느냐다. 중간에 둘째가 생기면 둘째가 4살이 될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는 게 함정.(ㅠㅠ)

결론적으로 백일의 기적, 첫 돌의 천국..그런 거 없다. 적어도 세 돌은 지나야 살만해진다. 육아를 그저 장기전이라고 생각하고 닥치는대로 살아내는 게 오히려 속 편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더라도 눈 딱 감고 3년만 참아보자’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불행했던 건 아니다. 지난 5년간 우리집에서 금기어였던 ‘둘째’라는 말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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